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Disclaimer: 나는 반-새누리당 주의자이다. 혹시라도 특정 구절로 인해 박근혜를 옹호하는 식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온 국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매주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으나 청와대는 몇 주째 침묵으로 일관한다.
버텨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를 결정해줄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인물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주위 사람들은 최순실이 구속되어서 하야를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고 뼈있는 농담을 한다. :)

나는 박근혜 하야라는 요구에 대해 다소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4년 전에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국민들의 잘못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댓가는 결코 값싸지 않을 것이다. 물러나란다고 물러날 거라면 그들은 애초에 권력을 차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지 못한다면 4년 전으로 되돌려 놓을 수 없을 것이다. (9년 전으로 되돌리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박근혜가 물러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 하야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부터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 결코 끝이 아니라는 점은 다른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나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박근혜가 물러나는 것과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결은 거의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의 하야가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영웅주의의 투사에 불과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능력있는 야권의 유명인사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고질적인 환부를 도려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것은 심정적으로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탈권위주의적인 사회 변혁은 결국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국민들의 정치 인식이 한 명의 철인이나 영웅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우선은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새누리당의 부역자들을 정치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의 정치 인식이 한층 높아져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데, 아마 박근혜가 하야하더라도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들을 새롭게 정당을 꾸릴 것이고 일정 수준의 지지를 받는 정치 세력으로 커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금 박근혜를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리석게도 다음 선거에서 다시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들에게 표를 주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설마 그러지야 않겠지만 2017년 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피선되거나 2018년의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그 다음에는 재벌들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단죄하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 과감히 처벌해야 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취소할 수 없다면 이재용을 처벌하고 불법적인 승계 과정에서 취한 부당이익을 환수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될 것이고, 어떤 정치인도 쉽게 이 문제를 거론하지 못할 것이다. 친재벌 언론들의 경제 위기론을 귀아프게 들어야 할 게 뻔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국가 재산을 갈취하는 재벌들의 악습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동석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정치 형태를 분권화된 자율조직으로 바꾸고 국민들 스스로가 정치에 대해 생활의 일부로서 여겨야 한다. 김어준 총수가 “우리 생활의 스트레스의 근원이 정치다”라는 말을 해서 유명한데, 그의 정치적 제스쳐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크게 공감을 하고 있다. 좀 다르게 이야기를 해보자면, 정치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치를 우리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좀 더 성숙한 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정치에 대한 논쟁을 금기시하고 있는 문화가 있는데, 이것도 타파해야 할 인습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고 타인의 주장을 귀기울여 듣는 것이 민주 시민의 건강한 태도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얽혀있는 모든 부정부패에 대해 샅샅이 조사하여 죄에 대한 처벌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근혜 하야는 그것의 첫걸음일 뿐, 끝이 아니다. 박근혜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아도 괜찮다. 임기가 끝나고 나서라도 조사하고 처벌할 수 있고 시기가 언제가 되든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 이후로도 정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쉽사리 사그러들지 않기를 기대한다.

세상이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회의주의자이지만, 광장에서 타오르는 시민 의식에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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